[잡담] 내가 게임회사에 꼭 취업하고 싶"었던" 이유
[ 23.01.05 추가 ]
이 글은 과거 정말 게임 회사에 가고 싶었던 때에 작성했던 글입니다. 현재는 게임 업계에 대한 미련을 많이 버린 상태이며, 대학원 때 했던 일과 유사한 직종으로 취직을 한 상태입니다. 이 점을 감안하시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실은 쪄 죽을 듯이 더운데 취업 시장은 얼어 죽을 정도로 춥다. 엄청난 한기다.
ML 신입 포지션은 사실상 절멸이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이직을 위해 열린 경력 포지션들만 즐비하다.
채용 연계형 인턴이던 뭐던 열려야 구직 활동을 할 텐데, 지금은 그런 거도 없으니 과거 야매로 배웠던 인공지능의 기초를 다시 다지고 공부를 해야 한다. 실제로 이 부분 때문에 넥슨 자회사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기도 했고.
내가 테크 블로그를 연 이유가 아직 내가 즉전감이 아닌 실력이고, 채용 시즌까지 비는 기간에 이걸 헤쳐나가기 위해 고민하던 중에 뭐라도 해야지 싶어서였다.
물론 헬스케어나 다른 분야에서 ML 포지션을 많이 뽑겠지만, 난 그러기가 당장은 싫고 게임 분야에 계속 집어넣어볼 예정이다.
오늘은 그 이유와 그 간의 인생사를 정리해볼 겸 적어보고자 한다.
중학생까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 고등학교에 와서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나는 낙생고등학교라는 곳에서 졸업했다. 고등학교 입학 당시부터 게임에 더 몰두하게 되었다.
아마도 기존 공부에 대한 반감과 떨어진 성적에 대한 반동으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때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임을 만나게 된다. 사이퍼즈다. 이 게임은 1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한다.
이 게임을 통해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이런 게임을 통해 다른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다!
마침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방향에 게임회사들이 굉장히 즐비하다. NC사옥은 그냥 바로 보인다.
이 회사들이 밝히는 불빛들을 보면서 생전 처음으로 꿈을 가졌다. 게임 프로그래머였다.
이후로 내 진학 목표 학과는 항상 컴퓨터공학과가 되었다. 그때가 고1이었다. 난 이 꿈을 정말 소중히 여겼었다.
이후 수능을 거하게 말아먹고 6개의 모든 수시를 등급을 못 맞춰서 떨어진 마당에, 다행히도 내 모교인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로 진학할 수 있었다. 물론 아쉬움은 남지만 지금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고, 배운 게 더 많기에 지금은 미련이 없다.
여러 운이 따라줬다. 2015년만 해도 컴퓨터공학과는 중하위권 과였고, 알파고 등장은 2016년, 입결 상승은 2017년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첫 1년은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성적도 잘 나와서 성적 장학금도 매 학기마다 땄다. (성적 장학금은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2016년, 2학년 2학기 때 들은 파일처리론에서 C언어로 B+ 트리를 못 짠 이후로 심각한 좌절이 시작됐다.
내가 코딩을 너무 못하는 것이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C언어로 이 생각을 옮겨 적질 못했다.
이 때문에 그 학기를 사실상 던졌고, 시험기간에도 게임하는 기행을 저질러버렸다. 모든 학기 통틀어서 가장 낮은 학점을 받았다. 4.3에 3.49가 나왔다.
이후로 난 내가 정말 소중히 여겼던 첫 꿈인 게임 프로그래머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너무나도 컸던 좌절로 인해 도피성으로 군대에 가게 된다.
하지만 그 도피는 오래가지 못했다. 입대 한 달 만에 내가 알고 보니 신의 아들이라면서 의병전역을 선사해 줬던 것이다...
원래 그 도피기간 동안 마음도 좀 추스르고, 자격증도 많이 따면서 이거 저거 해보려 했었는데 모든 게 물거품이 된 것이다. 정보처리산업기사를 이 기간 때 첫 시도에 바로 따긴 했지만, 대학교 4학년 때 정보처리기사를 따서 바로 묻혔다.
결국 2018년에 난 복학해버렸다.
1년 만에 학교에 돌아와서 같은 학번 내에서도 샌드위치가 되어버렸다. 여자들은 이미 전부 4학년이고, 군대 전역한 남자들은 전부 2학년이거나 군대에 있었다. 나만 3학년이었다.
물어볼 곳조차 없어서 지독하게 공부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외로웠다.
그러던 삶을 살던 와중, 내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된 수업을 듣게 되었다. 수치해석이었다.
그 수업은 나의 많은 부분을 바꿨다. 꿈을 다른 방향으로 꿀 수 있게 해 줬다.
코딩이 아닌 수학으로도 뭔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후로 내 목표는 데이터 분석이 되었고, 이는 추후 ML 엔지니어로 변경된다.
배움에 목이 말랐던 당시의 난 대학원 진학을 했다. 대학원 진학 생각은 놀랍게도 신입생 때부터 있었다.
어쩌다 보니 헬스케어 쪽의 데이터를 건드렸고, 이런저런 논문을 내면서 성과가 나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코딩 실력이 내 발목을 계속 잡은 것이다. 2학년 이후로 발목 잡혔던 부분이 대학원에 와서도 문제가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수학 베이스가 조금 더 강한 연구실로 옮기게 되었고, 거기서 다시 모든 걸 배웠다.
하지만 컴퓨터를 전공한 사람은 결코 코딩에서 멀어질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할 수 없이 코딩을 했다.
그러다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된다. 판교의 한 스타트업 회사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다.
마침 집도 판교 근처이고, 학교에서 했던 일들을 실제로 제품화하는 스타트업에서 인턴을 지내게 된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대학원에서 멘탈이 엄청 갈리고 너무 지쳤던 상태였던지라 사회성이 좋지 않았고, 이 때문에 사수에게 정말 많은 미안한 일을 벌이게 되었다. 지금 다시 만나면 정말 미안하다는 말만 하고 나올 거 같다. 커뮤니케이션 부분은 인턴 하면서 내가 잘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정말 절실히 깨달았던지라 지금은 이 부분에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다.
운이 정말 좋게도, 인턴 하는 당시 중학생 때부터 친하게 지낸 내 오랜 붕우가 넥슨에 취업해서 다니고 있었다. 버스 타는 곳과 내리는 곳이 같았기에 가끔가다 만나면 맨날 게임 이야기만 하곤 했다. 가끔가다 만난 이유도 웃긴데, 당시 넥슨은 코로나로 인해 최소한의 출근만 하며 재택근무를 했고, 나는 그런 생각조차 불가능한 스타트업이어서 매일 출근했기 때문이다...
오랜 붕우와 만나서 이야기할 때마다 마음속에 있었던 엄청 공허한 공간에서 들리는 외침이 들렸다.
넌 게임을 해야 해
당시 헬스케어 쪽으로의 진로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근데 저 외침이 들린 이후로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인턴은 끝났지만 내 졸업은 아직 멀었기에, 약 한 달간의 폐관 수련을 통해 새로운 인공지능 모델을 만들어냈다.
잘 안 알려졌지긴 했지만 논문에서는 이미 있던 모델을 만들어냈다. 내가 꽤나 고생하며 케라스로 직접 짜내고 학습시킨 모델이었던지라 엄청 기뻤다. 데이터도 혼자서 다 만들어내야 했고, 모델을 만들 때 물어볼 곳이 전혀 없어서 극한의 구글링만으로 어떻게든 짜냈기 때문이다. 학습 때도 고생을 했는데, 이때 경험했던 수많은 노가다 방법들이 엄청난 경험이 되어 과제 테스트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모델로 국내 1개, 해외 1개 컨퍼런스에서 발표할 수 있는 영광도 얻었다.
졸업 논문도 차근차근 진행이 되고 있었고, 이젠 내 미래를 정해야 했다.
박사 고민도 많이 했지만, 이런 멘탈 상태로 박사는 꿈도 꾸기 어려웠다. 결국 취업을 선택했다.
취업 분야를 선택하는데 위의 외침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었다.
넌 게임을 해야 해
실제로 이때가 헬스케어에 대한 환멸감에 많이 사로잡혔던 때였다.
마땅히 이끄는 대기업도 없고, 의료 분야의 보수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대학원에서 했던 일이다 보니 너무 괴로웠다.
결국 이 외침은 나를 넥슨 채용 사이트로 이끌었다.
거기서 운명의 공고를 보게 된다. ML 엔지니어를 뽑는 것이었다.
"아, 여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후로 내 에임은 헬스케어에서 전부 게임으로 돌리게 되었다.
과거의 꿈이었던 게임 프로그래머로서 게임을 통해 즐거움을 주는 것은 실패했지만, ML 엔지니어로써 즐거움을 주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본 이후로 난 과거에 버릴 수밖에 없었던 첫 꿈을 다시 되찾을 수 있었다.
취준 기간 동안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가장 급했던 것이 멘탈 케어였다. 원래는 푹 쉬고 싶었지만 푹 쉬어봤자 좋은 일도 없었을뿐더러, 도망친 곳에는 낙원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최대한 멘탈을 잘 구슬려서 지금은 나름 괜찮은 수준까지 올라왔다. 취업해서 돈을 벌면 많은 케어가 될지도 모르겠다.
PS 문제를 계속 풀면서 C언어가 아닌 파이썬으로 푸는 연습을 했고, 5달이 지난 현재 코딩에 굉장히 자신감이 생겼다. 최근에는 내게 코딩 트라우마를 줬던 그래프의 기초를 파훼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이는 내가 넥슨 자회사 중 한 곳의 최종 면접에서 대답하지 못한 부분과 꽤 일맥상통하다.
먼저 게임과 연관된 프로젝트를 한 번이라도 한 적이 없다. 내 프로젝트는 오직 학교에서 했던 헬스케어 프로젝트만이 전부였다. 그래도 이는 게임 회사가 풀어주는 데이터가 많지 않기도 하고, 있어도 내가 했던 분야가 아니라서 섣부르게 손대기가 애매했다고 변명 정도는 해볼 만하다.
두 번째로 인공지능의 아주 기본적인 부분에 대답을 못했다. 야매로 인공지능을 배웠던 것의 부작용이었다. 이는 전적인 내 잘못이기에 그저 공부해야 한다.
세 번째로 나의 스택이 너무 얕다. 파이썬과 케라스만 그나마 할 줄 알고, 은근히 요구되는 스택인 SQL의 기초만 알지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일단 이 부분은 SQL을 안 보는 공고에다가 집어넣는 방식으로 파훼하고 있다. 결국 내게 중요한 건 케라스로 모델 잘 짜고 결과 잘 나오게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 부분들을 계속 채워나가고자 테크 블로그를 열고 공부하려 한 것이다.
물론 취업을 해도 블로그는 꾸준히 관리할 것이다. 어차피 이 직종이 평생 공부가 기본이기에 말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블로그 꾸미는 걸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다.
지금 내 꿈은 바뀌지 않았다. 게임을 통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다. 다만 게임 프로그래머가 아닌 ML 엔지니어로써 주는 것으로 바뀌긴 했지만 말이다.
과거의 게임 개발자들이 게임을 통해 나에게 즐거움을 줬고, 나 또한 이 즐거움을 후대의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나는 게임을 통해 즐거움을 후대에 물려주는 선순환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 그것이 내가 게임회사에 꼭 가고 싶은 이유다.